[사진=박주영 (C) 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kfa.or.kr)]
이 승리는 FIFA 랭킹 14위의 유럽스타일 축구를 구사하는 호주대표팀을 맞아 다득점 경기를 했다는 것과 평가전이 있기전 국가대표 선수차출 문제가 불거져 있던 국내 축구계의 좋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이끌어낸 것이어서 그 값어치가 더 크다 하겠습니다.
또 하나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은 선수 대부분이 유럽 유수의 클럽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선수들이었다는 것과 이들을 지도하는 감독이 그 누구보다 한국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란 병가의 격언은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는 9월 초 상암벌에 서있던 베어벡 감독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오랜만에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태극전사들이 다득점을 하게된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칼날 같은 역습 - 이청용, 박주영
전반 5분 한국은 단한번의 역습찬스를 놓치지 않고 상대방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이 골은 이른 시간에 터진 선제골이라는 점도 유념해야겠지만 그동안 우리 대표팀에 결여되어 있던 날카로운 카운터 어택이 제대로 발현된 것이라 두고두고 기분 좋은 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호주 진영에서 횡패스가 정확성을 잃고 사이드라인으로 나가는 것을 호주 선수가 살려 놓는다는 것이 치명적인 백패스로 이어졌습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현재 볼튼에서 뛰고 있는 이청용 선수가 공을 잡고 빠른 역습을 진행했습니다. 중앙에 있던 박주영 선수는 수비수를 달고 골문쪽으로 쇄도중이었고 이청용 선수가 오프사이드와는 상관 없는 적절한 타임의 침투패스를 박스 안쪽으로 넣어주었습니다. 수비 두명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뛰쳐나온 박주영 선수는 다소 각이 없는 상황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먼 포스트쪽으로 골키퍼도 어쩔수 없는 슈팅을 날렸습니다. 역습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데가 없는 거의 완벽한 골장면이었습니다.
어시스트를 기록한 이청용 선수의 빛나는 패싱감각과 쉽지 않은 상황에서 훌륭한 피니쉬를 보여준 박주영 선수의 골결정력은 가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내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도 이와 같이 높은 수준의 역습이 우리 대표팀에 가능하다면 16강 진출의 희망은 그리 허망된 것이 아니라 보여집니다.
전력이 열세인 팀이 강팀을 만나 예상밖의 결과를 만들수 있고 선제골을 잡아낸 팀이 동점을 위해 공격 일변도로 나오는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역습"은 우리 대표팀 경기력에 커다란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다양해진 공격루트
이번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공격 방식은 이전보다 다양해져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시도는 되었으나 피치 위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공을 펼칠시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두 세명이 보여주는 세밀한 부분전술, 최전방의 공격수에게 연결되는 긴 패스를 키핑과 다음 플레이로 이어가는 장면, 데드볼 상황시 활발한 움직임으로 수비를 교란시키는 장면 등이 골고루 나와 그동안 대표팀 공격이 단조로웠던 아쉬움을 많이 달래주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팀 공격이 어렵지 않게 풀리는 날엔 평소보다 많은 셋 피스 상황을 얻게 됩니다. 2번째 골은 코너킥을 떨궈주고 마무리하는 아주 바람직한 방식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조모컵의 MVP 이정수 선수는 전문 골잡이와 같은 감각적인 슈팅으로 호주의 골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그 외에 전반 이동국 선수의 움직임은 대표팀 공격이 원활히 진행되는데 상당부분 도움을 주었습니다. PK박스 근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좌우로 돌아나오며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간결한 패싱게임에도 관여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제대로된 타겟맨 역할까지 해주는 박주영 선수도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날리는 등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이동국 선수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투톱의 움직임이 살아나자 공격작업은 좀더 부드러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담금질해야할 부분들이 남아 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나아진다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마냥 답답해하는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아진 수비에서의 공격전개
호주의 베어벡 감독이 우리대표팀을 지휘할 때 중앙수비수 조합으로 김상식-김동진 라인을 가동한 바 있습니다. 수비에서 미드필드나 공격진으로의 패스전개시 이 두 선수가 괜찮은 피딩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수비에서 공을 소유하고 전진시키는 장면에서 이영표-조용형-이정수-김동진으로 이루어진 수비라인은 평소보다 나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조용형과 이정수는 긴 패스에 강점을 보이고 이영표와 김동진은 미드필드진과 괜찮은 연동성을 보이며 보다 나은 공격전개를 가능케 했습니다. 호주의 전체적인 압박이 느슨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대표팀의 조직력이 길었던 아시아 예선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 게임 괜찮았다고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되겠습니다. 남아공에서 우리와 상대할 팀들은 더 무시무시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모습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높이를 이용한 호주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공격에 계속 위험스런 상황이 연출되었고 압박이 무너졌을 경우 적절한 커버플레이가 아직 미숙한 모습이었습니다. 말 그래도 우리의 현 전력을 "평가"하기 위한 경기였던만큼 나타난 문제점들을 꾸준히 보완하고 우리의 장점들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