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제4라운드 리버풀 FC와 볼튼 원더러스 간의 경기 리뷰입니다.
리버풀은 당초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꼽히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되고 3라운드까지 리버풀이 받아든 성적표는 1승 2패 승점 3점이라는 참담한 것이었고 경기 내용마저 리그 우승을 노리는 팀에 걸맞지 않아 팀의 충성스러운 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볼튼 원더러스는 근래 UEFA 컵(현 유로파리그)에 출전하는 등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의 주포 아넬카가 빠져나가면서 리그 중하위권으로 성적이 내려 앉았습니다. 이번 시즌도 개막 후 내리 2패를 당하며 홈에서 열리는 리버풀전에 패할 경우 팀분위기가 완전 침체될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즌 초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볼튼과 리버풀은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리그를 뜨겁게 달궈 놓았습니다.
한국 축구팬들은 이번 여름 볼튼으로 이적한 이청용 선수의 출전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었고 머시사이드의 팬들은 볼튼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빅4의 위상에 합당한 리버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리버풀 스타팅 라인업
토레스
리에라 제라드 카이트
마스체라노 루카스
인수아 키르기아코스 캐러거 존슨
레이나
리버풀은 충격의 패배를 당했던 3라운드 대 아스톤 빌라전과 비교해 두 포지션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베나윤 대신 클래식 윙어 스타일의 리에라가 선발 출전했고 중앙센터백 케러거의 짝으로 새로 영입된 키르기아코스가 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중원 플레이가 사라진 리버풀
경기는 대부분 리버풀이 주도권을 잡으며 공격을 퍼부었고 볼튼은 한 번에 넘어가는 긴 패스에 의한 역습을 시도하며 흘러 갔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의 공격루트는 수비하기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비에서 중원을 거쳐 공격진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플레이를 보기 힘들었고 대부분 압박이 덜한 사이드로 공을 돌려 단순한 패턴을 답습했습니다.
마스체라노-루카스로 구성된 리버풀의 중원은 제대로된 공격전개를 펼치지 못하며 사비 알론소의 공백을 더욱 드러나게 했습니다. 볼이 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이드에서 전진하게 되면 상대방 수비라인과 미드필드 라인이 전열을 갖춘 상태라 수준 높은 콤비네이션에 의한 공격이 나오지 않는 이상 위험한 장면을 만들기 힘듭니다.
어찌해서 측면을 뚫고 크로스 기회를 잡아도 중앙에는 이미 많은 수비수들이 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리버풀은 중원으로의 공투입이 쉽지 않은 상태였고 그나마 제라드나 카이트가 패싱에 관여해도 영양가 있는 전진 패스를 넣어줄 선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마스체라노는 "마지우개"라 불리며 뛰어난 홀딩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공격을 풀어줄만한 영민한 패서와는 거리가 있는 타입입니다. 또 다른 미드필더 루카스는 센터서클 근처에선 잘 보이지 않으며 포지셔닝에 문제를 노출했고 가끔 어디에 있는지 잘 찾아 보아야만 등번호 21번을 확인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리버풀의 이 중원 딜레마는 캡틴 제라드에게 더 넓은 행동반경을 요구하며 팀 공격력이 저하되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후반 볼튼의 션 데이비스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숫적 우위를 점하기 전까지 리버풀은 중원을 통한 정상적인 경기운영에 애를 먹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퇴장이후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리버풀은 보로닌이 공격에 투입되고 제라드가 중원으로 내려오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패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니 상대진영까지 힘들이지 않고 공을 운반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공격진영이 안정되자 여러가지 골을 노리는 위협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리버풀로선 중원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해줄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리버풀의 현재 에이스는 글렌 존슨
리버풀 하면 제일 인상깊은 것이 바로 영혼의 콤비 제라드-토레스 라인의 막강한 공격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요새 리버풀은 위에 언급한 중원의 문제를 겪으며 두 선수의 공격력을 최적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번 시즌 새로 영입한 글렌 존슨이 공수에서 펄펄 날며 답답한 부분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오른쪽 풀백이 주 포지션인 글렌 존슨은 왠만한 윙어 못지 않은 훌륭한 공격력으로 리버풀에 새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동점골 장면에서도 글렌 존슨은 팀의 주력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코너킥이 굴절되어 박스 밖에 위치해 있던 자신에게 흘러오자 수비수 한 명을 슛 페인트로 제끼고 수많은 수비들을 바라보며 골문 구석으로 강력한 왼발슛을 시도하여 천금 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냈습니다.
분위기가 볼튼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동점골의 가치는 더 크다 하겠습니다. 요새 리버풀의 어느 선수보다 공을 잡으면 뭔가 만들어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선수가 바로 글렌 존슨입니다.
팀에서 제일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글렌 존슨이라는 것은 선수의 기량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현재 리버풀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
사비 알론소가 떠난 리버풀 중원의 허전함은 리그 경기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체자로 여겼던 가레스 베리는 신흥 갑부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을 입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부랴부랴 데려온 아퀼라니는 아직 피치에 설 수 없습니다.
최선의 방법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차선책을 찾아 그것과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라파 베니테즈는 선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이 부분을 메우려고 하고 있으나 아직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리버풀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목표로 정한 성과를 거두려면 어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대로 중원에서의 문제점을 풀지 못하면 탄탄한 전력의 리버풀은 지난 시즌의 이야기가 될 정도로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
중앙수비수 키르기아코스는 혹독한 EPL 데뷔 경기를 치렀습니다. 동료와의 호흡이 부족하여 여러 번 실수를 했고 잉글랜드 축구에 조금 자신감이 없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조금 더 적응기간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와 그리스 대표팀에서의 키르기아코스는 대담하고 조금 뻔뻔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수비수였습니다. 리버풀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른다면 종종 멋진 헤딩슛을 터트리는 이 말총머리 수비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스트라이커 중에서 수비 뒷공간이 확보되었을 때 가장 위력적인 선수중 한 명이 바로 베이비 페이스를 지닌 킬러 페르난도 토레스일 것입니다. 제라드의 멋진 패스를 받아 골문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 환상적인 마무리를 짓는 토레스를 빨리 보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루카스 선수에 대해 좋지 않은 부분만 언급했는데 이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도 그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너무 앞쪽에서 플레이 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볼튼과 리버풀의 경기는 끝나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긴장감이 돌 정도로 화끈한 한판승부였습니다. 리버풀이 도망가는 볼튼을 계속 따라붙으며 결국 3:2 펠레 스코어로 승리했습니다.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의 리버풀이 저력을 발휘하며 우승후보다운 강력함을 되찾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