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준결승 한국과 일본의 진검 승부는 27시간을 더 쉰 일본의 승리로 판가름났습니다.
선제골을 넣고 후반 들어 정신력으로 체력을 재충전한 대한민국이 결승전에 가나 싶었는데 역전 후에 극적인 동점골로 경기는 승부차기 끝에 결과를 알 수 있었습니다.
승부차기 결과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PK까지 간 과정이 너무 힘겨웠기에 아쉬운 맘은 덜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밤 3,4위 결정전이 있습니다. 좋은 결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합니다.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다…
준결승 대 일본 전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빅게임이었습니다. “왕의 귀환”이라는 프레이즈를 걸고 쾌조의 경기력을 보이던 한국은 강적 이란마저 비교적 쉽게 물리치며 숙적 일본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경기 일정상 하루를 덜 쉰 한국은 전반 초부터 일본에게 체력적인 문제를 노출하며 험난한 준결승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쉽게도 이날 일본은 단단한 조직력을 선보이며 이전보다 강한 전력으로 한국을 몰아 부쳤습니다. 태극전사들은 체력적 부담을 어깨에 지고 한층 매서워진 블루 사무라이를 상대했습니다.
축구란 경기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이 가실겁니다. 몸이 힘들어지면 본인이 소유한 기술을 평상시대로 사용하기 어려우며 실행했다해도 제대로 구사가 되지 않습니다. 체력적 한계가 느껴지면 숨쉬기조차 힘들어 경기를 보는 시야는 급속도로 협소해지며 공처리 하기도 버겁습니다.
물론 우리 태극전사들은 프로선수들이어서 위의 내용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반 초반 이영표의 헛다리 후 컨트롤 미스, 서로간의 패스미스, 긴 패스에 의존한 단순한 공격루트 등은 모두 체력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습니다.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세 가지 요소는 체력, 기술 , 전술입니다.
일본과의 준결승을 치룰 때 우리 태극전사들은 핸디캡을 안고 있었습니다.
“오늘 경기는 우리에게 체력적으로 어려운 게임이었다” 라고 밝힌 주장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강팀의 조건
일본과 우리나라는 양팀 모두 새로운 사령탑이 선출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전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날 일본은 그들의 최고게임을 펼치며 달라진 일본 축구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엔도, 하세베, 혼다로 구성된 중앙 미드필드진은(혼다는 프리롤이었지만) 볼 간수와 중원 장악에서 사실상 한국에 앞섰습니다. 특히 양쪽 풀백들은 공세시 한국 측면을 깊숙히 파고들며 전술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공격 전개 시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움직임과 플레이 메이커의 역할이었습니다.
엔도와 하세베는 최종수비라인 근처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내고 패스를 연결해 점유율을 상승시켰고 이날 공격에서 가장 빛난 혼다는 중앙과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물꼬를 트는 패스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며 한국을 어려운 상황에 몰아 넣었습니다.
기성용과 이용래로 구성된 한국 수비형 미드필더진은 경기 운용면에서 아직 실력이 만개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수비에서 공을 돌리다 선택사항이 적어지면 최전방을 향한 긴패스로 소중한 공격 소유권을 내주곤 했습니다.
사실 일본전 전까지 조광래호의 숏 패스, 논스톱 패스, 긴밀한 조직력은 상대 진영에서 공격하는 상황일 때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의 이런 모습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케로니 감독은 한국의 체력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과 수비진영에서의 공격전개가 원활하지 않은 점을 이용해 전방에서부터의 터프한 압박으로 큰 재미를 보았습니다.
강팀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나뉘어지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수비에서 공격 전개 시 중앙 미드필드와의 유기적인 연결과 가해지는 압박의 해체에 있습니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무너진 압박으로 생긴 상대방의 균열로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해집니다.
“수비는 곧 공격이고 공격이 곧 수비이다” 라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일본의 패싱 플레이는 잘 연습된 클럽에서나 가능해 보일 정도로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허나 양 사이드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상대 공격수에게 연신 허용했던 장면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습니다.
세계 축구계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유형… 캡틴 박…
발치 후 볼이 부어 올라도, 상대방 축구화 스터드에 차여 얼굴에 번개 모양의 흉터가 있어도, 바로 앞 게임을 연장전 풀게임으로 치루어도, 그라운드 전반에 걸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캡틴 박지성 선수였습니다.
캡틴 박의 왕성한 활동량은 세계가 다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 손수 보여준 캡틴 박의 서있지 않는 다리와 경기 집중력, 사명감과 페어 플레이는 다시 한번 감탄해 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축구하는(긍정적으로) 박지성과 같은 축구선수는 앞으로 나오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캡틴 박의 100번째 A매치는 이렇게 끝이 났고 이제 국가대표 은퇴만이 남아 있다 합니다.
맘 같아서는 더 있어주라고 매달리고 싶지만 그동안 헌신했던 박 선수여서 오히려 남은 선수생활을 좀 여유 있게 즐기라 격려합니다.
은퇴 발표 기자회견은 안 볼 수 없겠지만 대한민국 7번 유니폼의 주인공이 더 이상 박지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해 맘을 진정 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